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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댁산 사람들 3 향로봉- 억겁의 세월 공양을 올리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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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217,547회 작성일 18-08-2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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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가시기 시작했다. 철책을 거침없이 넘어 온 백두대간은, 지나온 북을 돌아보고 달려가야 할 남쪽을 굽어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두동강난 백두대간의 남쪽 최북단 향로봉(香爐峰, 해발 1293m)은 눈도 뜰 수 없는 거친 바람을 이기며 아침을 맞는다. 그리곤 동해를 벗어난 아침해가 금강산을 깨우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아침해에 하얗게 빛나는 백마봉, 미륵봉, 비로봉, 월출봉, 일출봉…. 그리고 해금강까지 이어지는 금강산의 풍광. 늘 철조망과 겹쳐 다가오는 그 모습은 언제나 가슴을 시리게 한다.

향로봉은 그렇게 빤히 보이는 금강산 1만2천 보살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향 공양을 올리는 형국이다. 여름철 계곡에서 피어나는 안개가 산을 휘감는 모습은 영락없이 향 연기에 휩싸인 ‘향로’라는 것이다. 그러나 분단의 시대에서 옛 사람들의 그러한 상상은 용납되지 않는다. 가난에 밀려 향로봉 골짜기까지 흘러 들어왔던 이들의 고난한 삶과 터전은 이제는 역사의 뒤안보다 더 멀리 밀려나 버렸다. 향로봉은 분단의 아픈 상처를 상징하듯 군인들의 발길만을 허용되는 땅이 됐다.

“여름에는 해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안개와 비 때문에 늘 옷이 젖게 돼 피부병으로 고생하기도 하구요. 겨울에는 날씨가 좋지만 엄청난 눈과 바람,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와의 전쟁에서 먼저 이겨야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을지부대 향로봉대대 중대장 이영국(29) 대위와 그의 중대원들에겐 멀리 보이는 금강산은 경계의 대상이고, 한번 내렸다 하면 1m를 넘는 눈은 당장의 임무를 방해하는 적이다.

향로봉 일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자연보전 상태가 완벽하다곤 하지만 정상 밑의 이야기일 뿐이다. 능선 바로 아래에 있는 주둔지에서는 바람 한점 없는 봄날이더라도 20∼30m 더 올라간 정상은 삭풍한설이 몰아치는 북극이기가 십중팔구다. 정상 근처는 지표흙이 바람에 다 벗겨져 삭막하기까지 하다. 심지어는 바람에 섞여 날아온 돌에 맞아 안경이 깨지기도 한다. “오늘 바람은 초속 14m, 체감온도는 영하 18도, 시계는 아주 양호합니다.” 2m가 넘는 눈과 측정조차 불가능했던 바람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이승호(23) 병장은 오늘 날씨는 봄날이라는 투였지만 북녘을 향한 기관총은 곧 부러지기라도 할 듯 바람이 다가올 때마다 부르르 몸을 떤다.

분단되기 전 향로봉에 있었다는 천연당이라는 제당도 결국 이 바람을 못이겨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50여m 아래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제당에서 매년 음력 9월9일이면 향로봉을 사이에 둔 회양군과 고성군, 인제군의 군수들이 산신제를 드렸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드리던 곳도 이곳이었다. 향로봉 기우제는 효험이 있기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80년 영동지방에 가뭄이 들었을 때는 고성군수가 향로봉 아래의 골짜기에서 기우제를 올린 뒤 사흘만에 큰비가 내렸다고 한다.

“올 겨울은 아직 큰 눈이 없어 다행입니다. 향로봉 눈은 정말 끔찍합니다.” 향로봉 정상의 주둔 병력은 향로봉 대대 병력만 1개 중대, 인근의 국가시설에도 그만한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이들에게 눈이 공포스러운 것은 진부령 정상부터 20여km를 잇는 보급로가 눈으로 차단되는 것. 불도저와 굴삭기 1대가 이들이 눈과 싸울 수 있는 무기다. 그러나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만나는 지역인 향로봉의 날씨는 예측을 허락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제설작업을 나간 불도저까지 고립시키기도 할 정도로 향로봉 날씨는 위력적이다. 식량과 연료 보관창고를 보급로 군데군데 설치한 것도 이동중에 갑작스런 폭설로 고립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진부령에서 향로봉까지 난 보급로는 말 그대로 보급로일 뿐이다. 정예 산악부대를 외치는 이들의 이동수단은 두발뿐이다. 그들은 거리를 묻는 질문에 전봇대가 318개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향로봉까지 20여km의 산길을 오를 때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전봇대가 유일하다. “그래 이제 몇 개 남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1년이면 전봇대에 적혀 있는 구호도 모두 외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향로봉과 동글봉 사이에 꼭대기를 칼로 베어낸 것 같은 평지로 된 봉우리가 있어요. 옛날에는 그곳에다 농사를 지면 만석지기가 된다는 전설이 있었드래요.” 몇몇 노인들의 기억속에나 남아 있는 희미한 전설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살던 터전에는 잡목만 무성하고 그들이 간밤의 꿈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넘던 능선에는 철조망의 시퍼런 날이 살벌하다. 억겁의 세월을 차디찬 바람을 이기며 1만2천 보살을 향해 늘 ‘향 공양’을 올리는 향로봉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일이다. 해질녘, 철책선 GOP를 잇는 보급로를 달리는 자동차 불빛과 탐색등의 불빛은 슬프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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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봉…산양이 뛰도는 한국특산식물의 보고

향로봉 일대는 사람의 간섭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민간인통제구역인 탓에 비교적 자연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1972년 한국자연보존회의 향로봉지구 자연종합 학술조사에 의해 그 실태가 보고된 뒤 칠절봉에서 향로봉, 건봉산 등을 잇는 향로봉산맥 일대가 1973년 천연기념물 249호로 지정됐다.
해발 1000m 이하는 한국 온대지역의 극상림인 신갈나무가 군계를 이루고 있다. 1000m 이상으로 올라가면 분비나무와 잣나무 군락이 격리 분포해 있다. 조사된 관속식물만도 94과 334종 648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한국 특산물은 금강초롱, 넓은잎쥐오줌풀, 죽대, 지리대사초 등 27종의 한국 특산식물과 왜솜다리, 흰제비난, 큰잎쓴풀 등 3종의 특수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녹지자연도 8등급에 해당하는 향로봉 지역은 곤충의 보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40여종의 곤충이 이 지역에서 최초로 채집 기록됐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 풍뎅이도 이곳에서는 흔하다. 지금까지 보고된 곤충류는 17목 140과 769종에 이른다. 포유류도 멧돼지, 노루, 고라니 등 보고된 40여종 가운데 수달(330호), 사향노루(216호), 산양(217호) 등 천연기념물의 서식이 보고 되고 있다. 인근의 진부리, 장신리 사람들은 너구리, 노루, 고라니, 멧돼지 등은 어렵지 않게 관찰된다고 말할 정도로 동물의 보고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73년 향로봉 일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뒤 95년부터 생태계보호지역 지정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천연기념물 사실조차 아는 이가 드물다. 향로봉 지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음을 알리는 안내간판조차 보이지 않는다. 귀중한 자연유산을 제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진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 급하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댁산-사람들-3-향로봉-억겁의-세월-공양을-올리는-산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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